시간을 내어 조금 긴 글을 써봤어요.
What’s in my mind:
바기오에 있는 아시아퍼시픽 신학원에 와서 수업을 시작한지 다섯 주 째. 그 동안 이곳 생활에 적응하면서 수업을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과 음식을 적응하는 중이고, 자동차 없이 생활을 하기도 힘들다. 내가 오래 살았던 북미나 유럽과는 여러가지가 다르다. 물건은 쌈빡한 중국제를 사용한다. 별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아니면 값이 열 배나 비싼 미국이나 한국제품들을 사야하는데 돈이 넉넉지 않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쓰는 물건을 주로 사용하는데 별 불편은 없지싶다.
여기에는 미얀마, 일본, 중국, 필리핀 현지 학생들이 주로 공부하고 있고, 태평양 섬 나라들, 미국, 태국, 말레이지아, 인도, 아프리카, 파키스탄, 캐나다, 등등의 학생들도 있다. 말하자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학생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교수들에게는 아주 탁월한 학생들이다.
교수들은 수업 외에도 가끔 채플설교와 매주 금요일에 학생들과 함께 놀고 떠드는 스몰그룹 시간도 한다. 캠퍼스에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고, 가정이 있는 학생들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뛰어놀며 생활한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 때나 내 방문을 두드려서 스파게티를 내 저녁으로 가져온다. 우리가 늘 먹었던 스파게티와 똑같은 거다. 가끔 나랑 기타치며 노래하자고 내 방을 두드리는 뚱뚱한 필리핀 학생도 있다. 현재 캠퍼스에 있는 일본학생 세명과 아직 일본에 있지만 이곳에 8월에 죠인할 학생 한 명은 중 세 학생들과 공부한다.
그동안 내가 최선을 다하여 만들어 먹은 음식은 밥, 흰키드니콩밥, 야채 물만두, 야채만두 라면, 짜파게티, 종갓집 김치, 구운 김, 상추와 고추장 꽁치통조림, 비빔 국수, 쇠골국, 템푸라 라면, 그리고 아침에는 오트밀, 토스트, 계란후라이, 베이컨, 인스탄트 커피, 그런데 우유가 비위를 좀 상해서 잘 안먹고 있고, 피자를 두 번 시켜 먹어봤는데 맛이 그닥 없다. 아마 내 입맛이 적응하는 기간이 조금 필요할 듯 하다.
아내가 내년 세금시즌이 끝난 후에야 이곳에 합류하므로, 나 혼자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몇 일전 내 룸메이트를 처음으로 만났다. 연두색 빛을 띄고 납작하고 작은 체구의 도마뱀이다. 우리 어머니가 내가 오십이 넘었을 때 내게 지어준 별명이 도마뱀이었다 (?). 그래서인지 약간 친근감이 드는 룸메이트이다. 그 녀석은 별로 눈에 띠지 않고 혼자 어딘가에서 생활한다. 그것이 혹시 내가 잘 때 내 침대 근처에서 나를 지켜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앤 뭘 먹고 살까?
이 곳 학생들은 일년에 삼 학기를 각 10주씩 공부하는데, 한 학기 등록금은 무조건 $250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비싼 학비이다. 필리핀에서 대학을 졸업한 일반 직장인들의 한 달 월급이 약 $200에서 250인걸 감안하자면 그렇고, 캄보디아나 베트남에서 온 학생들에게 아주 비싼 학비이다. 지난 팬데믹으로 여행이 금지 되었던 2년간은 모든 학비를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나 처럼 이곳의 정교수로 티칭하는 교수들이 학교로 부터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시아에서 이런 신학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어찌보면 유일한 방법일 수 있다. 우리 박사(PhD) 과정은 코스 전체 학비가 $2000 이다. 미국 풀러신학교의 박사과정의 일년 학비가 $14,000 정도이고 끝날때까지 한 10년 걸린다고 보면, 이 학교의 박사과정 학비는 거의 무료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실 북미나 타 선진국가에서 온 교수들에게는 학비가 싸게 느껴지고 그래서 혹시 학생들이 공부를 가볍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꺼리가 되기도 하는데 우리 학생들의 수업열과 그들이 생산하는 에세이, 리포트, 논문의 수준은 높다. 아시아는 지금 기독교를 통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중심에 있다고 본다. 바로 그 이유가 내가 여기로 오기로 한 이유이다. 나는 한동안 죽기전까지 내가 공헌할 수 있는 것으로 가치있게 살다가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을 해 보았었다. 우리를 후원하시는 분들이 아시아 신학교육의 현실을 이렇게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몇 일전에 강도 7.0의 지진의 약 80마일 북쪽 지역에서 일어났다. 강도 7도는 큰 지진이다. 그래서 물론 우리가 있는 바기오 시티에서도 이게 세상의 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흔들림이 있었다. 시애틀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하며 식탁 밑에서 그들에게 안녕을 고했다고해도 과장은 아니였다. 그리고 그 후 강도 5도대의 여진이 지진대를 타고 아직 진행형이다. 오늘 새벽 2시 48분에도 5.4도로 이지역을 흔들어 놓았다.
높은 산지, 침엽수, 활엽수, 야자수들이 섞인 자연숲속 캠퍼스는 아침엔 태양이 내리 쪼이고, 낮에는 장대비가 천둥과 번개와 함께 내리고, 밤에는 조용한… 그런 로맨틱한 곳. 어떤 때는 수업보다 창문을 내어다 보면 소설을 쓰고 싶은 곳. 이런 이상한 곳에서 적응하면서 가장 간절한 마음은 우리가 세월과 정성을 바쳐서 하는 일들이 좋은 열매가 생산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Translations for this article may be off and funny because I use many colloquial expressions of the Korean langau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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